
(전라신문) 조계철 기자 =지방이 수도권의 전력 공급기지로 전락하는 현실이 더는 용납될 수 없다. 전북, 전남, 충남 주민들이 국회 앞에서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멈추라 외친 것은 단순한 ‘송전선로 반대 운동’이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국가균형발전의 권리 회복 운동이다. 산업정책이 수도권 집중을 전제하는 한, 지방은 발전의 주체가 아닌 희생의 대상일 뿐이다.
정부와 대기업이 추진 중인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은 그 상징적 사례다. 전력 수급이 불가능한 지역에 산업단지를 억지로 얹고, 부족한 전기를 수백 km 떨어진 지방에서 끌어오겠다는 계획은 에너지 식민지 구조를 재확인하는 일이다. 622조 원의 메가 프로젝트라 자랑하지만, 그 뒤에는 수천 개의 송전탑과 지역 공동체 파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이제 산업정책의 중심축은 바뀌어야 한다. 헌법은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을 명시적으로 요구한다. 수도권의 과밀은 교통, 환경, 주거, 전력 모든 영역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반면 전북 새만금은 재생에너지 생산 기반과 부지 인프라를 갖춘, 전력 자립형 산업 생태계를 조성할 최적지다. 정부가 진정 ‘반도체 경제’을 이야기한다면, 수도권의 전력을 지방에서 빼앗는 대신 산업 자체를 전력 생산지로 옮겨야 한다.
새만금은 이미 풍력·태양광·수력 등 다원적 에너지 전환 실험이 가능한 공간이다. 여기에 반도체, 데이터센터 같은 전력 다소비 산업을 배치해 ‘전력 수요지에서 생산지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이런 구조적 변화가 있어야만 국가균형발전이 공허한 구호가 아닌 현실정책으로 작동할 수 있다.
지방을 희생양 삼는 현재의 송전 정책은 단순한 행정 실패가 아니라, 헌법적 책무의 포기다. 국토의 균형은 선택이 아닌 의무이며, 수도권 과밀 해소와 지역소멸 방지는 그 실천의 핵심이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새만금 조기개발을 중심축으로 분산형 전력망과 산업입지 재배열 전략을 수립하라. 그것이 지방을 살리고,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균형을 세우는 유일한 길이다.

